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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book

정협지 ★★★

by 꿀먹는푸우 2010. 1. 11.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나 역시 막 고등학교에 입학 할 때
서점에 가서 각종 문제집을 마구 샀다.

그때가 연말인지 연초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교보문고에서 이벤트를 했었나 보다.


  

100명단위로 책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소정의 상품을 주는 것 같았는데
아마 내가 '400번째 고객'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협지』를 받았다.

총 6권으로 이루어진 무협소설인데 계속 베란다에 썩혀두었다가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어본다...
   

정협지는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되면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으로
한국 무협소설의 효시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노영탄은 봉 문양이 새겨진 옥패를 가지고 있는데
가족을 모두 잃고, 용 문양이 새겨진 옥패를 가지고 있다는 형을 찾기 위해 떠난다.
노영탄은 무술계의 1인자라 불리우는 남해어부 상관학을 스승으로 삼게 되어 무술을 익힌다...

그리고 무술계의 진기한 보물이라 일컫는 최고의 서적 <숭양비급>을 차지하기 위한 숭양파와 회양방 간의 대립..

노영탄, 악중악, 감욱형, 연자심의 情, 愛, 憎 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관계가 이 소설의 주 내용을 이룬다.


◎ 특징 1.  4자 호칭

판타지 소설은 '룬의 아이들'과 '드레곤 라자'를 읽어봤지만
무협소설은 처음 읽어 보는데 무협소설의 특징인지 이 소설만의 특징인지

얼음같이 싸늘한 여자라고 해서 불리는 '한빙선자' 연자심
붉은 가사를 입고 다니는 '홍의화상' 우람부루
전신이 황금색 누런 털로 된 사람 키의 절반이나 되는 원숭이 '금모거후' 처럼

각 인물들마다 별명이랄까..호칭이랄까.. 그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4자성어같은 것이 표현되어서
쉽게 그 인물이 연상 가능한 덕분에
6권이나 되는 장편 소설에 등장인물 또한 많았지만 읽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 특징 2.  풀을 건드려서 뱀을 놀라게 하다.

노영탄은 겁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섣불리 풀밭을 건드려 당치도 않게 뱀을 놀라게 해서 일을 그르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잡초를 베려다가 그 속에 숨어있는 뱀을 건드려서 놀라게 하는 것 같은 무모한 행동을 피하자는 까닭이었다.

만일에 풀을 베려다가 그 속에서 잠들어 있는 뱀을 깨우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때는 꼼짝달싹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풀을 건드려서 뱀을 놀라게 하는 어리석은 태도를 피하려고 애썼다.

다른 비유들도 많았지만 유독 "풀을 건드려서 뱀을 놀라게 한다.' 라는 표현이 자주 나왔다.
조심하라는 뜻으로써 작가가 묘사한 말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打草驚蛇 타초경사

풀을 베어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을 징계하여 갑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로,
훗날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할 때 신중하지 못해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경계심이나 준비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할 수 있게 한 것을 비유한다.
라는 사자성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특징 3.  주루


이 소설에서 술집과 숙박시설이 있는 곳인 "주루"는 이야기 전개를 위한 중간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주루에 들어가는 장면은 총 9번이 나오는데
노영탄이 남해어부 상관학을 만나는 것부터
악중악이 독응구붕 영감을 만나고 숭양파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것..
천목산, 응유산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 등
중요한 장면들이 나타나기 이전에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역할을 한다.



◎ 아쉬운 점 1.  노영탄과 악중악의 관계 쉽게 추리..

주인공인 노영탄, 몸에 지니고 있는 봉 문양의 반쪽짜리 옥패, 그가 사랑하는 연자심, 그가 익힌 동굴속에 그려진 4가지 술법...
노영탄의 형인 악중악, 몸에 지니고 있는 용 문양의 반쪽짜리 옥패, 그가 사랑하는 감욱형, 그가 익힌 숭양비급...

작가는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 것 같지만
너무도 쉽게 독자가 유추해 낼 수 있게끔 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노영탄과 악중악은 소설 초반부부터 마주치게 되는데 서로 얼굴이 매우 닮았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바로 이 둘이 그 형제가 아닐까 라고 추측하게 만든 점이 이 소설의 몰입도를 떨어뜨린 것 같다.


◎ 아쉬운 점 2.  빠른 마무리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노영탄과 악중악이 서로 대결을 하다가
서로의 옥패를 발견하고 바로 얼싸안으며 화해를 한다.
노영탄은 연자심과 감욱형을 다시 만나게 되고,
남해어부와 오매천녀는 회양방 사건을 마무리 짓고
남해어부 또한 악청용을 만난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건 사고들이 마지막 단 12페이지로써 마무리 되고,

어느덧 날이 밝았다. 새벽 안개가 점점 걷히고 태양이 얼굴을 들기 시작했다. 금사보의 거대한 건물이 벌판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을 뿐, 무림의 원수니 은혜니 인정이니 하는 모든 복잡한 감정이 구름처럼, 연기처럼 흩어져서 사라지고 말았다.

3문장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 된다.

응유산에서 바다괴물 원영과 구렁이의 싸움과 같은 불필요한 장면을 없애고
서로 화해하고, 마무리 되는 장면을 좀더 길게 설명해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결론.

이벤트에 당첨되어 처음으로 읽어본 무협 소설...
그것이 우연히도 한국 무협소설의 효시가 되는 정협지였다.
예전에 출간 된 책이어서 그런지 오타도 많고, 결말이 어떻게 날지 쉽게 유추 할 정도의 스토리 였지만
단지 구성 상의 문제였지
전체적인 스토리만 본다면 꽤 잘 짜여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