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book

신문 읽기의 혁명 ★★★★★

by 꿀먹는푸우 2009. 12. 10.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자
신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말 그대로 '읽기' 만 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신문 읽기의 혁명』 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책표지와 책 제목..
알고보니 꽤 유명한 책이었다.


이 책은
  • 첫째마당 /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
  • 둘째마당 / 지면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다.
  • 셋째마당 / 사설을 읽어야 편집이 보인다.
  • 넷째마당 / 신문 지면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렇게 4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같은 날 일어난 같은 사건에 대해 여러 신문사들이 직접 발간한 신문의 기사들을 직접 실어서
비교 분석을 하며 작가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어서
더욱더 쉽게 이해가 갔다.


◎ 첫째마당 /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

 


신문은
현실에서 어떠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면
취재기자가 그것을 기사로 작성한다.
그리고 그 기사는 취재부장, 편집기자, 편집 부장, 편집 국장를 거치면서
어떤 기사는 선택되고, 어떤 기사는 삭제되고,
선택된 기사는 무수한 수정 작업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표제를 정하게 되고,
그 표제또한 많은 수정작업을 거쳐간다.
그렇게 여러 관문을 통과한 기사는 비로소 신문 지면에 인쇄되어
우리에게 보여진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표제는 그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가 정하는 것이 아닌
그 기사를 받아보고 선택하고, 수정작업을 지시하는 상관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2002년 9월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다음날
각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보면
  • 한겨레 : 북-일 수교 교섭 내달 재개
  • 중앙일보 : 北, 미사일 발사 계속 유예
  • 동아일보 : 김정일, 일본인 납치 사과
  • 조선일보 : "對南 공작 위해 日人 납치"
이렇게 표제를 썼다.

신문마다 편집의 눈이 다르고 그 눈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사실을 각 신문들이 똑같이 1면 머리기사 소재로 다루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1면 머리기사의 표제만 보더라도 그 신문사의 관점을 파악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신문 만을 구독하며 그 신문의 보도대로 삶의 현실을 인식할 때, 그 신문의 편집 방향에 독자들은 세뇌 될 수 밖에 없다.

독자가 편집을 읽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편집에 의해 사라지거나 축소되면 없거나 작은 현실이 되고, 그리 크지 않은 사건도 편집에 의해 부풀리면 엄청난 의마가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대 대중사회의 현실이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 1단이나 2단기사로 짧게 편집한 신문과
1면에 큰 표제와 함께 메인 기사로 다룬 신문을 각각 받아본 독자들은
같은 사건이지만 다르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작가가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라고 말 하는 것 같다.



둘째마당 / 지면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다.

노동문제는 경제계의 움직임과 서로 유기적 관계에 놓여 있다. 대체로 노동쟁의 보도는 경제계의 동향을 전하는 경제면의 기사들과 연관지어 읽어야 사태의 진행 과정을 정확히 파악 할 수 있다.

기업들의 '손실' 주장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제면 기사들을 읽어야 함은 물론 경제면 하단에 실리는 주가 동향까지 연관지어 볼 수 있어야 한다.

흔히 파업 등에 관한 기사에서는 파업의 이유, 그들의 요구사항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 상황들 위주로 편집된 기사들이 자주 보인다.

기사와 진실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진실은 정치권력 앞에서 얼마든지 왜곡되어 질 수 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된 뒤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오는 20일 동안
프랑스의 유명한 일간지의 표제를 보면
  • 살인마 소굴에서 탈출
  • 코르시카의 아귀 쥐앙만에 상륙
  • 괴수 카프카에 도착
  • 괴물 그레노블에 야영
  • 폭군 리옹을 통과
  • 약탈자, 수도 60마일 지점에 출현
  • 보나파르트 급속히 전진! 파리입성은 절대불가
  • 황제 퐁텐블로에 도착하시다
  • 어제 황제 폐하께옵서는 충성스런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튀틀리 궁전에 듭시었다.

"나폴레옹"을 가리키는 말은 살인마에서 황제 폐하까지 단 20일동안 급격하게 변화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두환 정권 시절 '보도 지침' 이라는 통제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그 '보도 지침'은 어떤 면에 어떤 크기로 할 것인지..
심지어 표제까지 어떠한 식으로 할지 통제하는 지침이다.

정치권력에서 독립되어 있다고 알려진 언론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이 권력의 홍보지를 통해 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현명한 독자라면 보고 있는 지면 뒤에 숨어있는 정치권력과 신문사이의 역학관계도 입체적으로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지면은 요철(凹凸)인 셈이다.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저녁 7시를 전후로 1판이 인쇄되고,
밤에 일어난 큰 사건 사고들에 대한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최소 5판 이상을 찍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1판이 나오고 광화문 광장에서 시판 되자마자
'정치권력'들이 그것을 사서 읽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나 표제"가 있을 경우 '개입'을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사는 확대하고,
불리한 기사는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개입'은 광고주들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신문 수입의 70%이상이 광고에 있는 만큼 신문사에게 광고주의 역할은 엄청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언론 활동을 하는데 기자들이 가장 큰 압력을 느끼는 대상은
광고주 - 신문사주 - 정치권력 순이었다.

결국 우리는 "힘 있는 자" 들의 '개입'을 통해
우리가 자고 있는 밤 사이에
무수한 첨삭과 수정 작업을 거치고 난 신문을
다음날 새벽에 받고 그것을 읽게 되는 것이다.



◎ 셋째마당 / 사설을 읽어야 편집이 보인다.

나는 처음에 사설이 독자들이 쓰는 私說 인 줄 알았다.
그러나 최근에 신문사의 주장을 실어 펼치는 논설, 社說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자들 또한 사설읽기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문사가 특정 사안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사설을 통해 인식한 가치관이 결국 기사를 쓰거나 지면을 편집할 때 기자들의 판단을 지배하게 된다.

첫째마당에 나온 것처럼 1면의 머리기사를 보고 그 신문사의 관점을 알 수 있지만
사설을 읽음으로써 더욱 정확히 그 신문사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설을 읽을 때는 사설이 얼마나 사실(事實)에 근거한 것인가 못지 않게 어디까지가 사실(史實)과 일치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설 또한 일반 기사와 마찬가지로 논설위원들에 의해 첨삭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역시 무조건 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 넷째마당 / 신문 지면은 살아 숨쉬고 있다.

신문 기자는 자신의 기사나 표제로 직접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참여한다. 자신이 쓴 기사로 현실이 바뀌는 모습을 목격할 때가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언론인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을 넘어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고전적인 명제가 힘을 발휘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신문 지면을 편집자적 안목으로 읽어내는 독자가 신문 구독자의 다수가 될 때면 신문 편집은 결국 변할 수 밖에 없다.

신문 편집자가 왜곡된 편집 구조 속에서 왜곡된 편집을 하더라도 독자 자신이 지면을 재편집하여 읽을 수 있다면 언젠가 신문편집자도 독자들을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언론 주권을 제대로 지키는 지름길이다.

혁명적 신문 읽기란
표제들만 보며 그 신문사가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표제를 보고 그 신문사의 편집의도를 짐작 한 후에 더 나아가
각 기사에 대한 관련 기사 및 사설과의 유기적 연관 속에 비판적으로 읽어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닫는 글'에서 작가는
"편집을 읽지 못하고 지면에 실린 기사를 보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라고 했다.

나는 여태까지 나무만 보고..
심지어 몇년된 나무인가..어떤 종류의 나무인가 조차도 알지 못한채
'아, 나무가 있네.'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젠 '숲'이라는 전체를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비록 아직은 나무에서 숲으로 시야만 넓어진 것이지
그 숲속에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 까지는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숲을 보는 방법을 알았으니
조금씩 조금씩 그 숲에 대해 연구하면서
신문 기사를 다시 재편집해서 읽을 수 있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