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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book

재능의 불시착 ★★★

by 꿀먹는푸우 2022. 6. 1.

 

여러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실제 직장에서 있을 법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공감도 많이 갔고, 사이다 같은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사이다 결말은 현실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더 사이다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막내가 사라졌다.
회식 자리에서 여성 본부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팀장은 지도교수와의 여행 계획인 사적인 일을 시키는 등 회사생활과 잘 맞지 않다고 판단한 막내 시준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팀장이 화내면서 찢어버렸다. 결국 시준은 대리인을 통해 퇴사절차를 밟게 되고, 대리인으로 부터 회사에 전달한다.
"코팅된 사직서"를

 

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해외봉사를 자주 나갔고, 그에 대한 기억이 좋아 사회재단인 NGO에 들어간 강혜진.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이윤보다는 선한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려고 들어간 직장은 조직의 존폐가 후원금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돈을 버는 기업보다 훨씬 돈에 민감한 곳이었고, 후원금을 땡겨오는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곳이었다. 
후원 아동에게 매월 10만원씩 충전되는 식사 카드가 지급되는데, 그 카드로 남자아이 2명이 18,000원 어치 돈까쓰 세트를 먹었다는 것에 화가 난 후원자로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 본인 집 아이들은 돈 아끼기 위해 냉동 돈까스를 먹는 다는 말과 함께.
아주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 뿐이면서 안 맞는 일로 가득 찬 일을 직업으로 택한 것임을 깨달은 혜진은 결국 퇴사를 했다.

저는 시설에서 자랐는데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놀라요. 밝아서 그렇게 안 보인다고 하죠. 그리고 어른들은 기특해하세요. 나쁜 길로 안 가고 이렇게 번듯하게 자라줘서 고맙다고요. 저는 그 말들을 무척 싫어합니다. 시설에서는 당연히 제대로 못 자랄 거라는 편견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카이스트 나와서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얘기를 하면 순간 공기가 이상해집니다. 아까까지 따뜻하게 웃으며 저를 격려하던 사람들이 당황하거든요. 자기들이나 자기들 자식보다 제가 더 잘되었다는 사실이 불합리한 일인 것처럼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어떨 때는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해요.

 

전설의 앤드류 선배

오피스 빌런에 대한 에피소드였는데, 마지막 각주에 나온 주간동아 오피스 빌런 특집 기사에 대한 내용이 제일 인상깊게 남았다.

오피스 7대 빌런
1. 3번 지시해야 업무를 해오는 제갈 공명 빌런
2. 남은 일을 다른 사람이 하도록 떠넘기고 사라지는 신데렐라 빌런
3. 늘 자리를 비우는 다크템플러 빌런
4. 일이 터지면 남을 내보내고 보상은 자신이 챙기는 포켓몬 트레이너 빌런
5. 엑셀 프로그램 등 본인이 모르는 건 일단 배척하는 흥성대원군 빌런
6. 능력에 비해 욕심이 큰 아따아따 빌런
7. 상대방을 악의 축으로 만드는 파워레인저 빌런

 

재능의 불시착

본능적으로 동서남북을 감지할 수 있는 재능과 무게를 잘 맞추는 재능이 있는 이준. 기존에 다니고 있던 게임회사는 구조조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직준비를 하는 도중 정진수를 만나고, 자원봉사에 같이 나가게 된다. 거기서 여행 콘텐츠 플랫폼 대표와 스마트팜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로부터 명함을 건네받는다.

원래의 압박 면접은 이력서에 적힌 내용 중에 허위가 없나, 해당 포지션에 능력이 있나를 꼼꼼하게 검증해서 찾아내라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이상하게 변질됐잖아요. 상대방에게 모욕을 줘서 당황하게 만든 후 얼마나 침착하게 반응하는지를 평가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준은 이제 고작 서른두 살이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의 기준을 성인 평균 수명의 3분의 1로 잡았다고 했으니, 백 세 시대에서는 어린이가 서른세 살까지인 셈이다. 무엇을 새로 발견해도, 새로 시작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였다. 준은 아직 불시착한 게 아니었다.

 

누가 육아휴직의 권리를 가졌는가
바쁘게 움직이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아내가 휴직했을 때와 지금의 풍경이 다른 것 같다는 자각이 불현듯 스친 것이다. 나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에는 집안일을 하지 않았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내가 집에 있으니 말이다. 가능한 한 일찍 들어와 준우 목욕을 시켜주고, 주말에 준우를 함께 돌보는 것으로도 나의 역할을 넘치도록 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내가 퇴근 후에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당연한 듯 보고 있었다. 아내가 냉장고에 채워놓은 반찬과 과일을 꺼내 먹으며, 밥통은 무심하게 텅텅 비워둔 채로.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입 안 어디에서 까끌거렸다. 나는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작은 방으로 가다가 지금까지 궁금해하지 않았던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저 사람은 언제 쉬지?'
어쩌면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도 빌어먹을 호르몬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애를 낳고 몸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주 7일 18시간씩 일하면서 잠도, 식사도, 샤워도 제대로 못 하면 누구나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인수인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이는 죽을 듯이 울고 있으면 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어린이집에서 A 원생이 속해있는 만 3세 반인 달님반을 맡고 있는 재영. A의 부모는 재영에게 시도때도 없이, 밥을 잘 안 먹는다, 잠을 안 잔다, 애가 운다 등의 이유로 상담 요청을 했고, 식사 후 사진, 재밌게 노는 사진 등 점점 과한 요구를 했다. A부모는 재영이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사진도 찍어서 항의했다. 어느 날 재영은 친한 언니가 운영하는 키즈 카페에 놀러갔다가 A와 A부모를 만났고, A에게 사고가 발생했다. A 부모는 왜 아이를 돌보지 않았냐면서 항의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출근길에는 자동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는데, A 아버지의 자동차였다. A 아버지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바로 출발했다. 재영은 발목이 골절되고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A 부모의 태도는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재영은 A 아버지를 뺑소니로 신고하고, 명예훼손과 협박에 관한 내용증명을 보내자 드디어 A 부모는 사과를 해오기 시작했다.